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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에 나는 시골을 떠나 부산에 왔다.
부산 말씨는 떠나온 포항 영일 말씨와 사뭇 달랐다.
그런데 나는 시골에 가면 부산말씨를 쓰고 부산에 오면 반대로 포항 말을 했다.
무슨 심리냐 하면 한마디로 남한테 주목받고 싶은 그 한가지 아니었겠냐 싶다.
요즘은 TV나 매스컴이 일상화되어 말씨도 거진 표준화되었지만 당시엔 고작 신문이나 라디오가 전부였고
교통수단도 기차 뿐이니 포항~부산 거리가 족히 한나절권으로 마음속의 거리도 그만큼 멀었었다.
그러니 사투리를 쓴다는건 그 만큼 색다른 아이덴티티를 보여주는 방법 처럼 생각되었었던 것이다.
나는 누가 가르쳐준 것도 아닌데 그렇게 말씨를 바꿔 놀았던 것이다.
사람은 무리에서 아무런 존재감이 없어지는 것을 못참는다.
처음부터 그걸 감지하고 대비하는 나같은 애도 있고 또 다르게 대처하는 아이도 있다.
커서도 그 못참는 건 여전해서 더러는 잘난체도 하고 또 어떤 이는 화도내고 삐지기도 한다.
이런 치기(稚氣)가 사라지기는 쉽지 않아 늙어서도 노욕과 고집의 불통에서 헤어나지 못하기도 한다.
어떻게 하면 이 치기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자기의 아이덴티티는 정말로 확고하게 있는 걸까? 한번 잘 생각해보자.
내가 존재하지도 않는다면서 그렇다면 존재감이란 어떻게 생겨날까?
그 옛날 누런둥이 노인네는 연기(緣起)라고 했는데 참으로 그 말이 妙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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